2008년 11월 10일
[Jazz] 음악을 대하는 어떤 자세
조슈아 레드맨의 글입니다.
장르의 구분 자체가 가치 판단으로 오해받는 일
그러한 오해가 두려워 구분 자체를 뭉개버리는 일
요즘에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한 듯 합니다.
음악을 대하는 조슈아 레드맨의 자세는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번역은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검색을 해보았는데 출처를 찾을 수가 없더군요.
알려주시면 바로 포스팅에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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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재즈를 들었을 때 그것은 재즈가 아니었다. 그것은 음악이었다. 나는 재즈를 다양한 성격을 지닌 다른 장르의 음악과 함께 듣는 것이 일상적인 가정에서 성장했다. 내가 어렸을때 나는 재즈가 블루스, 락, funk, 소울, 클래식, 인도음악, 아프리카 음악, 인도네시아 민속음악과 그리고 이루 헤아릴 수도 없는 다양한 음악과는 다른 범주에 속한 음악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나는 음악 장르 및 스타일이 각각 정의(definition)가 내려져 있고, 쉽게 구분되어진, 구체적인 지적 객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음악적 스타일들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물론, 열심히 음악을 듣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음악에 드러나는 감정적인 대조, 개인적 특징, 그리고 집단 정체성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각 레코드마다의 특별함을 느낄 수 있었고, 각 밴드의 독창성과 곡 하나 하나 마다의 독특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한 연주자가 다른 연주자와는 구별되도록 하는 특질 - 남이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한 소리를 갖도록 만든, 볼 수는 없지만 그 존재를 부인할 수 없는 그 무엇 - 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나는 스타일들의 차이를 꿰뚫고 동시에 하나의 스타일 내부에 존재하는 음악적 유사성과 상호작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상반된 연주성향을 보이는 연주자들의 연주에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모든 음악은 훌륭한 것이었고, 그 모든 음악은 괜찮게 느껴졌으며, 그 모든 음악은 모두 음악 그 자체였다.
나이가 들고 지식이 쌓여져 가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점차적으로 재즈를 독립적인 음악장르로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5도 반내림(flatted fifth)의 중요성을 배우게 됐다. 나는 스윙 리듬의 기술적인 뉘앙스를 이해하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재즈에 즉시성(immediacy)과 잠재성과 혼을 부여하는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규범인 즉흥연주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이룰 수 없는 완성을 이해했다는 점일 것이다. 나는 점점 더 재즈에 빠져들었으며 매료되었다. 음악인으로서 재즈는 내 전문 분야가 되었고 음악감상자로서 재즈는 나의 음악적 선택이 되었다.
나는 대학생활 초반 몇 년동안에는 심지어 '재즈에 빠져 잘난 체 하는 녀석'(jazz snob)으로 통하기도 했다. 기숙사 방문을 걸어 잠그고 블루노트 재발매판을 듣고 있을 때 박스 안에 처박아 두었던 모타운 레코드에는 먼지가 쌓이고 있었다. 나는 룸메이트가 듣는 헤비 메탈이 아무 생각도 의미도 없는 단순한 소음으로 하찮게 여겼다. 춤을 추거나 파티를 하거나 친구들과 건들거릴때는 힙합을 들었고 락의 고전 예를 들면 the who의 음악을 캠퍼스를 거닐면서 어쩔 수 없이 듣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공부하고 파고든 음악, 내가 흠모하고 존경한 음악은 재즈였다. 재즈는 심오한 음악이었고 재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이었으며 재즈는 음악 그 자체였다.
그런 것들이 당시 나의 음악에 대한 태도였으며 나는 한 때 재즈에 그토록 미쳤다는 것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지금 내가 마일스 데이비스의 카인드 오브 블루만큼이나 스티비 원더의 이너 비젼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고 여기는 것과 유사하다. 그런 과정들은 음악감상자이자 연주자가 거치게 되는 자연스러운, 심지어는 필수적인 발전과정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재즈가 아닌 다른 음악은 배격하면서 나는 재즈라는 진정으로 위대한 예술 형식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미묘하고 복잡한 재즈의 아름다움을 보다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재즈의 특성에 대하여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때와는 다른 시공간에 존재한다. 의심할 여지 없이 나는 여전히 재즈를 흠모하고 필요로 한다. 뿐만 아니라 나는 지금 평생토록 지속될 재즈에 대한 탐구 여정의 초입에 위치하고 있을 뿐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20세기의 재즈 거장들을 현대사의 어떤 예술인들 만큼이나 존경한다. 그리고 빠져나올 수 없는 고립된 무인도에서 평생토록 한가지 음악만 듣도록 선택을 강요당한다면, 나는 재즈를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나는 그런 선택을 할 필요가 없다. 예술은 솔직한 감정적 표현의 세계에서는 결코 절대적인 것, 가장 좋은 것, 계층, 혹은 최고에 대한 것이 아니다. 무인도 시나리오는 실제 세계의 취향과 선택과 태도에 비추어볼 때 전혀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요즈음 나는 모든 유형의 음악을 듣고 영감을 받는다. 또 다시 나는 음악적 연계를 느낀다. 나는 40년대 50년대의 비밥에서 항상 느끼던 갖가지 리듬적인 요소들을 90년대의 힙합에서 느낄 수 있다. 얼터니티브 록에서는 60년대 아방가르드 재즈에서 느낄 수 있는 원초적인 느낌, 날카로움 등을 느낄 수 있다.
나는 MTV를 보고 즐거워한다. 가끔은 MTV를 훌륭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모타운 레코드의 먼지를 쓸어내버리고 블루노트의 재즈 고전들과 함께 정리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비스밀라 칸'의 카세트 테이프를 보내달라고 전화했다. 내 cd장은 장르별이 아닌 알파벳 순서로 정리되어 있다. cd들은 장르 구분없이 뒤섞여 있으며 거기에 위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나는 성장하면서 학습한 미적 지식을 버리지 않으면서 동시에 어린 시절에 지녔던 열린 마음과 귀를 다시 지닌 것 처럼 느낀다.
나는 비판적 지성과 동시에 스타일에 대한 순수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나는 장르를 구분하지만 그 한계는 무시한다
나는 내 가지를 뻗어감에 있어 내 뿌리를 간직한다.
전통으로부터 와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간다.
집에 있는 기분을 간직하면서 여행을 떠난다.
집중과 선택, 전문화와 포괄은 공존할 수 있다.
내 것으로 취하되 그 특성은 살린다.
내게 순수한 영혼과 성숙된 이성을 달라
신념이 확고하면서 동시에 여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
스윙함으로써,
그루브 속에서,
재즈를 하며,
음악을 하면서.
-Joshua Redman
# by | 2008/11/10 20:51 | 듣기 | 트랙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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